1. 이오지마 전투에 대해서
이오지마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주요 전투였습니다. 이 경기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750마일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한 이오지마 섬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1945년 2월 19일 미 해병대가 섬에 상륙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미군의 목적은 일본에 대한 폭격 계획에 중요한 섬의 비행장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잘 되어 있고, 견고한 일본 수비대는 격렬한 저항을 펼쳤습니다.
전투는 36일 동안 계속되었고, 전투의 첫 며칠 동안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지형은 험준했고 일본 수비대는 터널, 벙커, 요새화된 진지로 이루어진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미군의 진격을 매우 어렵게 했습니다. 일본은 또한 가미카제 공격이라고 알려진 전술을 사용했는데, 그들은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미국 선박에 충돌시켰습니다.
이러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마침내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1945년 3월 26일에 미군은 그 섬을 함락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투는 양쪽 모두에게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6,821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26,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반면, 일본은 22,000명의 군인 중 216명만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거의 완전한 전멸을 겪었습니다.
이 전투는 수리바치 산 정상에 미국 해병대원 6명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사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사진은 미 해병대와 미군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그 사진은 조 로젠탈에 의해 찍혔고 수 많은 책, 잡지, 그리고 다른 매체에서 복제되었습니다.
2. 영화의 줄거리
일본 본토 남쪽에서 1천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손바닥만 한 쓰잘 데 없는 섬 화산섬이며 유황 냄새가 진동해 쥐조차도 살지 못하는 섬입니다. 그런 이곳에 전쟁의 상처가 가득한데 이 섬의 이름은 이오지마입니다.
약 80년 전 이 쓸데없는 작은 섬에 일본군은 3만 3천 명의 병력과 수십 대의 탱크 그리고 500문의 약보를 설치하고 군사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 미군이 이 섬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군은 이 섬을 점령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에 걸쳐 포탄을 때려 부으며 공을 들이고 있었고 일본군은 미군의 야심을 알아챈 후 곧 있을 미군의 상륙에 대비 해변에 참호를 파고 있었던 겁입니다.
여기에다 일본 대본영은 엘리트 출신의 신임 사령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장군을 전진 배치합니다.
섬을 둘러본 신임 사령관은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미군은 엄청난 폭격을 퍼부었지만 그에 반해 일본군의 피해는 치명적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죽지 않고 일본군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동안 열심히 파놓은 땅굴 덕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현지의 미군 지휘관은 고민이 많았고 스트레스가 많이 올랐는데 최전방에서 전투를 위해 상륙을 앞둔 해병대원들도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하지만 지휘부는 까짓 거 이런 작은 섬 상륙 일주일이면 간단히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미군은 상륙에 앞서 3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양의 포격을 실시합니다. 이렇듯 미군에 의해 섬이 통째로 포위되어 일방적인 포격을 당하는 가운데 일본군은 본국의 지원을 기대해 보지만 어려운 현실입니다.
드디어 1945년 2월 미군은 항공모함을 포함하여 200여 척의 함선과 7만여 명의 해병대를 동원 본격적인 상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가볍게 생각했던 미군의 생각과 달리 섬 전체는 일본군의 요새나 다름없었고 그동안 참아왔던 일본군도 반격을 시작합니다. 이렇듯 일본군이 물귀신 작전에 들어가면서 개전 일주일 만에 섬 전체 점령을 낙관했던 미군은 상륙 첫날 무려 3천 명이 전사하는데 일본군 역시도 90%가 넘는 2만 명의 병력이 대전 12일 만에 전사합니다.
양자 간에 죽이고 죽는 치열한 전투가 물러섬 없이 진행되면서 쌍방의 피해 역시 점점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이미 미군에 포위된 상태였고 미군은 총 20만 명의 전투 병력을 추가 투입하며 총력을 다합니다.
3.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
《아버지의 깃발》은 2011년 개봉한 미국의 단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페즈의 할아버지인 이그나시오 노리에가가 수리바치 산에 게양한 깃발을 노리에가 가족이 찾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페즈 노리에가의 아버지인 피터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할아버지가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었을 때 나왔습니다. 페즈는 가족의 역사가 미국 역사에서 이처럼 상징적인 순간과 얽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사진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페즈는 그의 할아버지가 게양한 원래의 깃발이 다른 해병대 그룹에 의해 더 큰 깃발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발견했고, 두 번째 깃발은 AP통신 사진작가 조 로젠탈에 의해 유명하게 사진에 포착된 것이었습니다. 원래의 국기는 이그나시오 노리에가에게 기념품으로 내려져 접혔다고 합니다.
노리에가 가문은 수년간 기를 잃어버렸지만, 페즈는 기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은 함께 국기를 추적하여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있는 해병대 박물관에 반환하기 위한 탐험에 착수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들을 캘리포니아에서 버지니아까지 전국을 가로질러 데려가는 그들의 여정을 기록하고, 역사가, 참전용사, 가족 구성원들과의 인터뷰를 포함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수많은 장애와 좌절에 직면하지만, 그들의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깃발을 찾아내서 현재 전시 중인 해병대 박물관에 반환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버지의 깃발"은 노리에가 가문의 유산과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간 중 하나와의 연관성에 대한 감동적인 찬사입니다.
댓글